dancing in the moonlight
내가 최근 가장 슬플 때는 우리 엄마가, 운동선수 출신인 천하의 한여사가 늙어가고 있다는 걸 깨닳을 때마다 이다. 뇌에 문제가 생긴 후 급격히 건강이 안좋아지면서 그동안 기다렸다는 듯 엄마의 몸은 하나씩 하나씩 폭탄을 터트렸다. 위는 고질적으로 안좋아서 내시경을 해댔고 유방암 검사에 작은 조직이 생겼다고 하고 눈도 갑자기 안좋아졌고... 그러다 교통사고로 가속도가 붙은 것 같다. 지금 엄마는 뇌치료는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사고 후 죽는 줄 알았던것에 비하면 감사할 다름이다만 자식 된 입장에선 매일, 매번 불안하다. 소리도 잘 못듣고. 자주 냄비를 태워먹고. 팔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 다니고. 이런 보이는 것들보다 더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엄마가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하면서 느낌이 외할머니..
금요일 ㅈㅁ, ㅇㅈ, ㅅㅎ 을 만나다. ㅈㅁ과 통화를 하면서 어디있냐고 한참 찾았는데 '네 눈앞에 있잖아' 란 소리에 앞을 올려다보니 그다. 안입던 양복을 입어서 바로 앞에 두고도 헤맸나보다. 워낙 사람을 잘 못찾기는 하다만. 그동안의 모습에서도 괜찮았지만 양복을 입은 그는 아주 괜찮았다. 계속 같이 있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양복입은 남자를 정말 좋아하긴 하는구나.. 물론 잘 어울려야 하는거고. 큰 키에 적당한 몸집이 있어야 하는거지. 키만 멀대같이 커서는 양복이 훌렁거리고 키가 작으면 답답해보이고 다리가 짧으면 더 짧아보이니 양복이 어울리는 남자도 그리 찾기 쉬운게 아니다. 하지만 금요일에 같이 있던 두 남자는 큰 키에 적당한 살집에 적당한 다리길이까지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하..
6개월을 소비했다. 겨우겨우 이어온 6개월. 사랑이라 생각했던 감정을 핑계삼아 오래동안 우려먹었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쨋든 나의 과거이니까. 행복했었고. 힘들었고. 그래서 난 조금 더 컸으리라. 이제 감상에 젖어있을 수 만도 없는 상태. 병원에선 피가 모자라다고 하고, 50% 에너지뿐이라고 하고 할매같이 어슬렁거리며 살아야한다고 한다. 적당히 먹고 슬슬 운동하고 푹자고. 지금도 머리는 아프고 글씨 쓸 힘도 부족하다. 어지럽고 손은 떨리고. 평생 갈 인연이라 생각했던 ㅁㄹ언니와 ㅎㅇ이는 본인들 좋을 때만 함께하는 사이였던 것이고. 잘해주면 그냥 그거라고 생각한다. 죽을 병은 아니지. 그저 불편한 병이다. 부자병. ------ 작년 11월 즈음에 종이에 낙서인듯 써두었던 것이다. 언제, 어디서,..
toploader - dancing in the moonlight duffy - mercy 토이 - 거짓말같은 시간
어제는 ㅇㅅ과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인사동에 자주 갔었지만 왠지 안들어가지던 쌈지길에 들어섰지. 아....잘 모르겠다...인사동은 시장통이 되어버렸다. 키치적인 쌈지와 인사동은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머 어쩌겠는가 이미 자리를 잡았으니. 어릴적 다녔던 고풍스럽고 어른스럽고 옛스럽던 인사동을 생각하고 지금의 인사동을 지나다보면 울컥울컥한다. 암튼. 결혼하고 사건 사고가 많은 그녀는 이번엔 위장장애로 입원까지 했다. 얼굴이 파리하고 재미없게 사는게 눈에 보여 안타까웠다. 내 주변의 유부녀들 중 최악의 케이스. 뜨거운 사랑으로 결혼한건지도 잘 모르겠을 뿐더러. 부모님의 반대는 아니였지만 결혼 후 더 사이가 안좋아진 관계와 철들지 않고 점점 겉도는 남편에 넉넉하지 않은 살림과 스스로 들볶아 점점..
담. 울타리/보호막/ but 걸림돌/장애물/
어제 ㅅㅇ을 만났다. ㅎ군을 사랑하는 그녀는 최근 오빠의 친구가 갑자기 덤비는 상황이다. 그녀는 ㅎ군을 진정 사랑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오래되기도 했고...무엇보다 그녀가 더 좋아하니까. 하지만 1. ㅎ군은 가난하고 물론 ㅎ군 자체는 똑똑하고 돈도 잘 번다만 집안이 가난하다. 2. ㅎ군 가족들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3. 결혼하려면 적어도 1년은 있어야 가능하다. 오빠의 친구는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사이다. 1. 그는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2. 집안 어른끼리도 잘 아는 관계다. 3. 당장이라도 그녀가 원하면 결혼할 수 있다. 그녀는 1. 결혼이 하고싶고 2. 억척/생활력 강한 스타일은 아니다. 물론 닥치면 강해질지도 모르겠다만. 3. 오빠의 친구로 인한 경제적 풍요가 그녀에게 행복을 주는 상황이다..
내 개인 홈페이지가 있었더랬다. 2000년도부터인가 2002년까지 무료홈페이지를 드림위즈에서 만들었는데 아무나 들어올 수 있다보니 심증은 가나 물증은 없었던 새개끼가 이상한 글들을 남겨 폐지를 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제로보드를 이용하여 회원가입과 로그인을 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이전 무료홈페이지에 있던 자료들은 일일이 손으로 카피패이스트 해서 새로운 홈페이지에 정리했었다. 게시판만 잔뜩 있었지만 음악과 영화와 그림과 사진과...나름 풍성했었지. 지인들이 어언...20명 넘게 가입을 해서 안부를 묻곤 했다. 싸이가 활성화 되면서 지인들이 둘로 나뉘게 되었다. 어쩔 때는 싸이가 더 편하기도 했고, 지인들도 내 홈페이지에 뜸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2년 전에 헤어진 그 덕분에 난 내 마지막 보..
역사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에 내어놓고보니 도무지 어디선가 본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 짝이없는 큰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 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버리고 싶더라.
몇 년만에 ㅅㅎ의 블로그를 찾아 들어갔다. 다행히 내 블로그에 그녀가 글을 쓴게 있었거든. 가끔 통화는 하여 서로의 생사와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블로그에 쓰인 글들은 적잖이 나를 놀라게 했다. 잘만 살거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여전히 몸이 부실하다. 신경은 예민하고. 이런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외롭다. 이건 정말 몰랐다. 한국에 있을 때도 매번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 상대가 누구든. 엄마든 친구든. 그녀가 나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이 너무 당연했다. 그녀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그런 그녀가 런던에서 외롭다고 한다. 내 일신이 복잡하여 다른 이를 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