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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4.11.29
    추억이란 이름에 빠지다
  9. 2014.10.23
    밤마다 핸드크림
  10. 2014.09.15
    아프면 못생겨져

예상치 못한 이벤트로 별 일 없던 일상이 뒤집히곤 한다.
경사는 하루 정도 신나면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조사일 경우엔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몇 년.이 지나도 새삼스럽게 새삼스럽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워낙 연로하시고 천천히 안좋아지시다 요양원에서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임종도 못봤고. 돌아가신 정확한 시간도 모른다. 돌아가신 걸 요양사분이 발견하신 거니까.
남편은 이제 늙은 고아가 되었네.

절을 하면서 어머님께 다짐했다.
아드님 지켜주겠다고.

금요일엔 삼우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갔다.
갑자기 돌아가신 터라 천주교식 장례를 할 수 없었지만 돌아가신 분이 원하셨던 바가 있어 이렇게라도.
작은 성당이라 소박하고 아담하였다.
나는 백만년만에 간 거라 미사포를 차마 못쓰겠더라.
그래도 평온함을 느끼며 장례를 잘 마무리하였다.




경조사일 때 특히 더 그렇다.
자기 일 아니라고, 가볍게 얘기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서 듣고 본 얄팍한 정보로 한 마디씩 하지.
이젠 그냥 떠들어라... 한다. 대꾸할 필요도 없고.
닥쳐야 알게 될테니.



아무튼.
엄마한테 잘하자.

and

어디든 그 곳에서 주인이 되어라. 그러면 그 곳이 바로 참된 곳이리니.
隨處作主 立處皆眞

대학교 4학년 때였나.
그림 제목을 저렇게 짓고 전시를 했더니 스님 한 분께서 누구 그림이냐 물으셨던 기억 갑자기 난다.

방황의 시기에 나를 붙들어매준 글이었지.
어디든 내가 이 곳의 주인이라는 마음으로 임하면 잘 될거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다녔던 듯 하다.
하지만 내 20대 사회생활은 엉망이었고.
언젠가부터 잊혀진 글귀였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어디든 주인이라는 마음으로 임하면 성공한다는 뜻이 아니라 참된다는 뜻이니 내가 맘대로 잘못 이해하고 버렸던 것이네.

참되다.....오만가지 의미로 해석 되겠지만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에 이르니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실천은 잘 못하고 있고.
계속 곰곰히 생각하고 행하다 보면 크게 깨닫는 날 오겠지.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and

손으로 조물조물 뭔가를 만들고 싶다.
그게 내 생업이 되어도 좋겠다 싶다.

어제 프로젝트에서 퇴출된다는 얘기를 들으니 또 한없이 이 생활이 지겨워졌다.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잘한다는 평가도 받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최고 결정권자를 잘 구워 삶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일을 잘 하던 못 하던.
옆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입안의 혀처럼 챙겨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건 그거고.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는 사람응 이제껏 거의 본 적이 없다.
배움의 차이는 아닌게 확실하고 경험의 차이도 잘 모르겠고 그저 인격의 차이라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다.

여하간 난 또 다른 일을 알아봐야하는데.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고 나면 기운이 쇠해 회복에 시간이 필요하다. 짧고 굵게 에너지를 쏟으니 그러하겠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할 수 있을까. 하게 될까.

프로젝트가 끝나가면 꼭 이렇게 홍역을 앓는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내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진단했고 난 아니라고 했지만 마음의 상처. 그게 맞다.
내 맘을 들여다 보고 잘 다스려보자.

 

and

아침 일찍 엄마가 오셨다.
같은 이름의 다른 동네에 갔다와서 오래걸렸지.
새로 담근 김치와 고추장아찌와 다듬은 고구마줄기와
호박 가지 고추 옥수수 밤 대파까지.
우리집 식량의 큰 부분을 엄마한테 받는다.

사위가 좋아한다고 옥수수도 구지 챙겨주시지.

아무것도 하기싫은 요즘 엄마가 챙겨주는 것들에 힘을 받았다.

오늘 저녁 뭘 해먹을까 생각해본다.

and

여중 여고, 그 다음을 또 여자들과만 함께하긴 싫어 무조건 남자많은데를 가겠다 했고, 갔다.

대학시절 드글드글한 남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여자여자 하던지
아님 나는 남자다 여기며 남자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든지.

사복으론 치마하나 없던 나는 자연스럽게 남자답게를 선택했다. 더 편하다고 생각했다.
남자선배동기들이 말하는 남자들만의 의리같은 걸 공유하겠다 생각했고 해냈다 생각했다.
술마실땐 동기놈들보다 늦게까지 남아 술취한 놈들을 비웃고 분위기를 주도하며 머 등등

사회생활에서도 주로 남자개발자들과 친하게 지내며 사고자체를 남자같이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제 버스에서 어떤 처자를 봤는데 자연스럽게 음담패설을 떠올렸고 그 순간 매우 놀랬다.


비극이다.
나는 내가 여자면서도 여혐과 여성의 성적대상화가 너무 나 자연스럽다.
성장하고 늙어가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인식하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최근들어 여러 강력사건으로 이제야 눈을 뜬다고 생각한다.


다행이다.
이제라도 고민할 수 있게 되어서.
생각과 행동에 인이 박힌 여성차별을 쉽게 한번에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긁어내는 작업을 하겠다.


and

다행이다.

간밤에 꾼 꿈.

전 남자친구와 만나 숲길을 걸었다.
그는 간난아기를 안고 있었다.
난 전혀 그 아이에게 애정은 없었다.
걷다 힘들어보여 잠깐 내가 안아주겠다 했고 내가 안았다.
오래지않아 아기를 돌려주었다.

우리집 방향 버스를 탔다.
우리집 근처에 같이 내릴까봐 난 전전긍긍.
너무 싫었다.
그런데 버스가 가다 돌아섰고. 나는 왜 그러시느냐 기사에게 물었다.
갈아타야할거라 했고. 나는 그를 택시태워 보내버려야겠다 생각하며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그리곤 꿈에서 깼지.


전 남자친구가 나와 기분이 별로였지만
내가 그와 같이있기를 너무 싫어해서 괜찮기도 했고,
그 아기를 내가 계속 안고있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지금 남자친구가 너무 보고싶었다.


5시 몇분에 깨서
밍기적 거리다 하드에 있던 전 남자친구의 모든 사진을 지웠다. 찍힌거든 찍은거든.


잘 살아라.




and

종로의 한 가게에 예약해 속눈썹을 붙였다.

밍크였나.. 자연스러운 걸로, 처음 붙이는 사람에게 적당하다는 두번째로 싼 걸로 붙였다.


따뜻한 침대에 누워

눈만 감고 있으면 되더라.


눈을 약간 시게 만드는 패치를 붙이더니 붙이기 시작.

붙여준 언니가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해댔지만 괜찮았다.

나도 감기막판이라 내 바이러스가 더 강하다. ㅋㅋ;


왼쪽부터 붙이고 오른쪽도 붙이고 부채로 부쳐주더니 끝났다고 거울을 드민다.


오호.

만화에 나오는 눈썹이 되었다.


6마넌을 카드로 긁었다. 비싸다. 


그러고 이틀동안 밤마다 잠을 설쳤다.

잠들고 나선 자꾸 붙인 눈썹을 이물질이라 생각해 잡아 뜯으려다 멈추고를 반복했거든.

눈꼽이 왜케 끼지..하다가 아니야 이거 6마넌 짜리야.. 하면서 잠을 깼다.

역시.. 예뻐지는건 힘들어.


낮엔 코가 낮은 탓에 눈썹이 자꾸 안경알에 닿아 기름칠을 하여 안경을 계속 닦아줘야했다.

처음 한거라 9미리짜리 붙였는데.. 도대체 내 콧대는 어느 바닥인지.


3일째. 낮과 밤 모두 적응했다.

렌즈를 끼니 눈이 더 커보이고 또렷해보이고 전체적으론 예뻐보인다.

역시.. 돈을 들여야.


하지만 다시는 안 할 생각이다.

눈이 원래 큰데 속눈썹을 붙이니 눈이 더 강조되어 눈화장을 하면 부담스러워는거 같다.

하나 둘 빠지는 눈썹을 볼 때마다 애가 타더라.


그래도 한 번 해보긴 잘 한 것 같다.


도둑질과 살인만 아니면 뭐든 한 번 해보자던 예전 다짐을 새삼 꺼내 다시 다짐을 해본다.



and

왜 그리 피해왔는지 모르겠다.

19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아니 15년이라 해야하나.

이미 나를 알던, 내가 알던 사람들은 없을테고, 

내가 지나고 생활했던 곳들도 많이 바뀌어 내 빈약한 기억력으론 제대로 기억도 못할텐데.


몇년만에 간 학교는 이미 무수히 많은 공간의 재배치가 있었다.

내가 주로 수업을 듣던 건물 옆엔 신식 건물이 들어섰고, 그 자리에 있던 작은 농구장은 물론 흔적도 없다.

곳곳에 내 기억엔 없었던 시설과 간판과 건물이 즐비하다.

다행히 학생회관만은 값싸보이는 색의 낡은 페인트칠 그대로 있더구만. ㅎ


약간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했다.

그 공연을 보기 전까진.


14학번 새내기들의 풋풋하다 못해 오글거리는 공연이 시작이었다.

쑥스러운 눈빛과 티비에서 보던 화려한 아이돌과는 판이하게 다른 어색한 몸짓에 웃기도 했다.

그리고 졸업생 들의 공연.

그 목소리 때문인것 같다.


예전 겨울방학때 학관 공사로 사학건물에 임시 이사를 한 적이 있다. 한 강의실을 쪼개서 동아리 4개가 같이 쓰는.. 열린공간의 단체 동아리방이랄까.

같이 쓰던 민중가요를 부르던 동아리에선 통기타에 노래를 자주 불렀다.

난방이 안되어 차가운 강의실의 공기와 청명한 통기타 소리와 민중가수들 특유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의 조화는 숨죽이고 듣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거든.

나뿐이 아니라 그 당시 동아리 죽돌이 선배들과 동기들도 노래가 시작되면 의례 조용해지곤 했던거 같다.


그 기억을 시작으로..

그 시절의 좋았던 기억들... 사람들... 로 머리가 가득차올랐다.

그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봇물이 터졌다. 

봉인이 해제되었다. 

그리움이 북받쳤다.


고마웠다.

나쁜 기억은 지우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만 기억하는 내 형편없는 기억력이 고마웠다.


자알 살고 싶어졌다.

순수한 마음으로 밝게 살고 싶어졌다.


무모하다싶던 열정을 다시 갖고싶다.

한 발 뒤로하고 있던 내 등을 떠밀었다.







and

작년만해도 11월 말 부터 였던거 같은데.
10월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자기전 핸드크림을 바른다.
샤워 후 바디로션도.
웬만하면 잊어버리는데 살갗이 당기고 따갑고 허벅지부분이나 발목은 간지러워서 로션을 찾게 되는 거다.

요즘들어 내가 늙는구나를 많이 느끼고 있다.
서른 아홉. 아홉수의 위력인가.

'피곤하다'가 며칠 반복되면 얼굴이 뒤집어 지질 않나.
그게 또 며칠 반복되면 얼굴 자체가 일그러지는 느낌이고. 안그래도 참 예쁜데 아주 가관이다.

길고 힘든 산행을 한 이후 계속 심신이 피곤할 일만 있어서 인지 피로가 켜켜히 쌓이다 못해 압착된 느낌이랄까.
며칠 그냥 편히 잠만 잤으면 좋겠는데 그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스트레스로 빵! 터지기 직전에 관둔 회사로 인한 스트레스와
다시 구직하는 스트레스와
빵집 알바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그지같은 회사들 면접을 보며 망한 소개팅에서 느껴지던 그 자괴감과
구석구석 엉망인 집안 정리 하느라 또 피곤해지는
이 악몽같은 생활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하고 따뜻한 곳에서 좀 쉬고 싶다.

and

​목요일. 동그란 얼굴이 네모가 되었다.
금요일. 찌든 느낌으로 늙어보인다.
토요일. 얼굴 전체 근육이 중력을 세배로 받는듯.

and